- 기자, 샤이마 칼릴, 플로라 드루리
- 기자, BBC News
- Reporting from 일본 도쿄 & 영국 런던
지난 8일(현지시간) 일본 남부에서 발생한 지진은 겉으로 보기엔 그리 큰 일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규모 7.1의 해당 지진은 별다른 피해를 일으키지 않았으며, 지진으로 내려졌던 쓰나미 주의보도 모두 빠르게 해제됐다.
하지만 해당 지진 직후 지금껏 한 번도 내려지지 않은 대지진 주의보가 내려졌다.
일본 기상청이 ‘대지진’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다음 주로 예정됐던 중앙아시아 방문 일정도 취소했다.
많은 일본인들이 10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대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들으며 자라왔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30만 명 이상이 숨지고, 태평양 연안에서 30m에 달하는 쓰나미가 일본을 덮칠 수 있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다.
그러나 수도 도쿄 남부 요코하마 주민인 마사요 오시오는 혼란함이 더 컸다고 했다. 마사요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당국의 이 같은 주의보가 당황스럽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우리는 지진 발생일을 예측할 수 없으며, 언젠가 큰 지진이 덮칠 것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전 계속 ‘정말 대지진이 일어날까?’라고 자문했습니다만,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지진’이란 무엇일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며, 과연 조만간 발생할 가능성도 있을까?
우리가 지진을 예측할 날이 올까
단층과 지진의 관계
일본 당국이 우려하는 것은?
일본은 원래 지진이 잦은 나라다. 불의 고리(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해 있어 지진이 연간 약 1500회 발생한다.
대부분 별다른 피해 없이 지나가지만, 2011년 북동쪽 해안에 쓰나미를 일으켜 약 1만8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규모 9.0의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처럼 큰 피해를 일으키는 지진도 있다.
그러나 일본 당국이 더욱더 우려하는 건 인도 밀도가 더 높은 남쪽 지방에서 발생하는 지진이다. 이곳에서 대지진이 발생할 경우 엄청난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동남부 태평양 연안을 따라 뻗어 있는, 지진 활동이 활발한 난카이 해곡을 따라 발생하는 지진은 지금껏 이미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난 1707년에는 난카이 해곡에서 길이 600km의 단층이 파괴되면서 일본 역사상 두 번째로 큰 대지진이 발생했고, 당시 후지산까지 분화했다.
‘거대지진’이라고도 불리는 난카이 해곡 대지진은 역사적으로 약 10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하며, 종종 연이어 발생하곤 하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1944년, 1946년 발생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이곳에서 앞으로 30년 안에 규모 8 혹은 9의 지진이 발생한 확률이 70~80%라고 말한다. 최악의 경우 수조달러의 경제적 피해는 물론 수십만 명이 숨질 수 있다.
지질학자 카일 브래들리와 주디스 허바드는 이 난카이 해곡 대지진이야말로 “거대(지진)의 상징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두 지질학자는 지난 8일 ‘지진 인사이트’ 뉴스레터를 통해 “난카이 해곡 대지진의 역사는 설득력 있게 무섭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지진을 예측할 수 있나?
그렇다면 실제로 지진을 예측할 수 있을까. 일본 도쿄대학교의 지진학 명예교수인 로버트 겔러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겔러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어제 당국이 발령한 주의보는 과학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겔러 교수에 따르면 주의보 발령 이유는 지진이 보통 “뭉쳐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지만, “개별 지진이 (대지진의) 예진인지, 여진인지 미리 알 수는 없다”고 한다.
실제로 지진의 약 5%만이 ‘예진’이라는 게 브래들리와 허바드의 설명이다.
그러나 2011년 대지진의 경우 앞서 규모 7.2의 예진이 발생했으나, 이를 당국이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대지진 주의보 시스템은 2011년 이후 이러한 규모의 재난을 방지하고자 개발된 것으로, 지난 8일은 일본 기상청이 이를 발령한 최초의 날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일본 기상청은 시민들에게 대비하라고 경고했을 뿐, 대피령을 내리진 않았다. 오히려 임박한 위협은 별로 없다고 강조하는 데 힘썼다.
기상청은 “대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평상시보다 크지만, 그렇다고 대지진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준비와 소통에 집중하고자” 국외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상 첫 대지진 주의보 발령이기에 국민들이 “불안감을 느낄” 수 있어 우려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마사요의 생각은 다르다. “정부가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겔러 교수 또한 이러한 주의보가 “그리 유용하지 않다”며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왜 주의보를 발령할까?
일본의 대지진 경고 시스템엔 경보와 그보다 낮은 주의보로 나뉜다. 지난 8일 발령된 것은 시민들에게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주의보였다.
그리고 이는 효과가 있었던 모양새다. 휴대전화에 울리는 경보음에 익숙한 일본인들이지만, ‘난카이 해곡’ 효과와 ‘대지진’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잠시 발걸음을 멈춰서고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마사요 또한 “이번 주의보를 보고 나도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점검하고, 한동안 소홀히 했던 (지진 시 대피할) 준비를 다시 한번 하게 됐다”고 인정했다.
태평양 연안의 많은 주민들이 이 같은 준비에 나섰다.
지난 8일 발생한 규모 7.1의 지진 진앙 인근인 미야자키현 남부 니치난에서는 지역 관계자들이 이미 문을 연 재난대피소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교도 통신’에 따르면 시코쿠 고치현 지역 기준으로 9일 오전까지 지자체 10곳이 문을 연 대피소가 최소 75곳이다.
‘도쿄 전력’과 ‘주부 전력’의 합작 투자 회사인 화력 발전소 운영사 ‘제라’는 연료 운반선과의 통신선 및 부두 내 대피 프로토콜을 재점검하는 등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고치현의 쿠로시오에서도 노약자 등 주민들에게 안전한 곳으로 자발적으로 대피할 것을 촉구했다. 와카야마현 당국은 지방 자치단체와 협력해 주민들의 대피 경로를 점검했다.
이번 주의보에 대해 회의적인 겔러 교수이지만 그래도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갖춰야 할 모든 예방 조치를 다 할 좋은 기회”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주일 치의 물, 통조림식품, 손전등용 건전지 등을 구비해둬라”고 조언했다.
추가 보도: 치카 나카야마, 제이크 라팜